앤디 워홀, 그의 작품과 명언은 참 많습니다.
그는 현대미술의 아이콘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또한, 가장 성공한 상업 화가이기도 합니다.
엄청난 유명세만큼이나 수많은 루머를 몰고 다녔습니다.
앤디 워홀
앤디 워홀을 잘 모르는 분이시더라도 이런 이야기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 줄 것이다.
이 명언은 사실 그가 한 말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그가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좀 더 자세히 찾아보니 2012년에 작성 된 글에서 발견되는데, 출처는 알 수 없습니다.
그의 유명세와 이미지가 맞아떨어졌던 탓일까요?
대다수의 사람은 여전히 그가 한 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진짜 그가 남긴 명언은 어떤 것일까요?
예술가는 사람들이 가질 필요가 없는 것들을 생산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훔쳐 달아날 수 있는 모든 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당신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앤디 워홀은 수많은 소문 속에 싸인 인물이었습니다.
그에 대하여 알아보니 그는 알려진 이미지와는 다르게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인관계와 사생활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존 예술가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기행들과
바람둥이라는 이미지와 갖은 추문들,
그리고 후원해 주던 예술가와의 열애설까지 겪었습니다.
거기다 총격 사건에 휘말려 큰 중상을 입었고, 평생을 장애를 겪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총격사건 이후 작품 활동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그의 일생을 잠깐 살펴보자면 1926년생이고, 대학교에서는 광고 예술을 전공하였습니다.
1952년 신문광고 미술 부문에서 수상을 하고, 이후 상업 디자이너로서도 성공을 거둡니다.
그리고 전직하여 전업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앤디 워홀의 작품
1960년대, 그가 살던 미국은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1961년, 그는 33세의 나이에 드디어 앤디 워홀 팝아트의 작품세계가 시작됩니다.
일상속에 있었던 수프 캔, 지폐, 코카콜라 병 등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대중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이용, 당시 미국 문화의 정체성을 표현하였습니다.
그의 영감을 자극한 사건을 꼽자면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급작스레 혼수상태로 입원한 동안 의료진으로부터 몇 차례나 사망선고를 받았던 일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마를린먼로는 아예 그녀의 죽음, 그 자체만으로 영감을 받아 작업했습니다.
그는 그 유명한 팝아트 작품들을 찍어 냅니다.
네, 말 그대로 찍어냈습니다.
실크 스크린이라고 불리는 '도안과 필름에 잉크를 롤러에 발라서 찍어내는 방식'을 통하여 찍어냈습니다.
이 방식은 짧은 시간 내에 수십 장을 대량으로 복제해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의 예술 작품이 끝없이 재생산됩니다.
이때, 나중에 'ART Worker'로 불리게 될 조수들을 고용합니다.
앤디 워홀은 일상을 다른 각도로 보기를 원하며 작품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관하여 크게 단언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의견을 제시하여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정도로 애매하게 답하곤 하였다고 합니다.
현대 미술에서 그의 작품이 여전히 높은 가치로써 인정받는 이유는 명확한 의미가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며 다양한 시각으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그의 예술 철학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앤디 워홀에 대하여 알고 싶다면,
그저 내 그림과 영화, 내 모습의 표면을 보면 된다.
거기에 내가 있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가장 성공한 상업 화가
그는 참 돈에 대한 애착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했던 예술가였습니다.
돈을 버는 것은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훌륭한 사업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예술이다.
이런 말을 남길 정도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사업적인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래서 가장 성공한 상업 화가라는 이름도 가졌습니다.
시험적인 작품들에 계속 도전하여 현대 미술의 아이콘이라는 별명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의 사망 이후 공개된 침실은 그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매우 검소했다고 합니다.
성공한 상업 화가이니 작품을 처음부터 매우 고가에 판매하였을 것 같지만,
예술은 대중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작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였다고 합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세계에서 제일 비싼 예술품이 그의 작품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그는 많은 사람이 쉽게 예술을 접하고 가까이하기를 누구보다 바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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